기림사는 경주시 양북면 호암리 함월산(含月山) 기슭에 있는 사찰이다. 창건 연대는 확실하게 알 수 없으나 선덕여왕 20년(643)에 원효대사가 중창하면서 기림사라 하였다. 전설에 의하면 천축국(天竺國, 인도)의 승려 광유(光侑)가 창건하여 임정사(林井寺)라 불렀다고 한다. 『삼국유사』에는 "신라 31대 신문왕이 동해에서 만파식적을 얻어 가지고 왕궁으로 돌아가는 길에 기림사 서편 시냇가에서 잠시 쉬어갔다."는 기록이 있어 통일신라 초기 신문왕 이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조선 철종 14년(1863)에 대화재로 113칸의 건물이 불탔으나 1863년 경주 부윤 송우화가 시주하여 중수하였고 1878년에 중수를 거쳐 1905년 혜훈이 다시 중수하여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기림사는 경주일대를 관장하던 사찰이었으나 지금은 불국사로 바뀌었다.
기림사란 부처님 생존 때에 세워졌던 인도의 기원정사(祇園精舍)를 뜻하는 것으로 석가모니가 생전에 제자들과 함께 활동하던 승원중의 하나로 죽림정사라고도 한다. 기원정사는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후 20년 넘게 머무른 곳이다. 이런 점에서 불자들의 수행도 유랑에서 정착 위주로 바뀌어 정사의 수도 늘어나게 되었다. 기원정사의 숲을 기림(祇林)이라 하였는데 이런 이유로 기림사란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다.
기림사의 가람은 조선시대와 현재의 모습이 조금은 다르게 되어있다. 조선시대에는 대적광전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약사전, 서쪽에는 오백나한전과 정광여래사리각인 삼층전이 있었으며, 남쪽에는 무량수각과 진남루가 있고 뜰에는 삼층석탑이 있다. 그밖에 조금 떨어진 곳에는 명부전, 삼성각, 관음전, 산신각, 주지실, 종무소, 요사체, 산문, 창고 등이 있다. 삼신각 뒤쪽으로 난 길을 따라 가면 매월당 김시습의 사당이 있다.
주요 유물로는 건칠보살좌상(보물 제415호), 대적광전(보물 제 833호), 소조비로자나삼존불(보물 제958호)이 있다. 건칠보살좌상은 종이로 만들어 옻칠을 입힌 불상으로 매우 드문 것이다. 높이 91㎝로 최근에는 금색을 다시 입혔다. 대적광전은 기림사의 본전으로 선덕여왕때 처음 지어졌으며 그 뒤에는 여섯 차례 중수를 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1786년 경주 부윤 김광묵의 시주로 다시 지어진 것으로 오늘에 이른다. 소조비로자나삼존불은 삼신불로 오른쪽에서부터 석갑모니불, 비로자나불, 노사나불이다. 상체는 크고 무릎은 상체에 비해 빈약한 감을 주며 네모난 얼굴을 하고 있다. 이 삼존불은 임진왜란 직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기림사에는 경상도와 경주의 행정과 행정관에 대한 인적사항, 신라이후 지방제도의 변혁 등을 기록한 『경상도여주제명기』, 『동도역세제자기』, 『부호장생생가』 등 중요한 문헌들이 전해진다. 또 조선역대 왕들의 어필(御筆)이 보관되어 있고 석비모양의 나무에 사적을 기록한 목비(木碑)가 전한다.
기림사에는 다섯 가지 맛을 내는 오정수(五井水)가 유명하다. 대적광전 앞 삼층석탑 옆의 장군수 기개가 커지고 신체가 웅장해진다는 물이고, 천왕문 안쪽의 오착수는 물맛이 너무 좋아 까마귀도 쪼았다고 하는 물이고, 국암의 감로수는 하늘이 내리는 이슬 같다는 물이다. 그러나 장군수는 조선시대 때 이곳에서 역적모의를 하다가 발각된 뒤 나라에서 매워 버렸다고 하고, 명안수는 최근 도로 확장 때 매몰되었다.
일제시대 때 서예가 해강 김규진의 현판이 진남루에 보관되어 있다.